화욜병이 도지는 날이다...
거기다 계절이 겨울로 넘어가는 시즌인지라
너도나도 담그는 김장의 시즌이 펼쳐진 터라
업무의 과중함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난이도가 급상승 되어 있다.
많은 곳은 20박스
적은 곳은 한두박스지만
이게 모이고 또 모이면 무시하기 힘든 숫자가 된다.
배추가 저렴해서, 양념재료가 비싸도 해야지, 물가가 올라서 김치로 겨울 보내야지 등등의
경기가 좋아도 김장, 경기가 불황이라도 김장...
그냥 한국인들에겐 좋으나 싫으나 김장이다.
전화도 많이온다.
특히 김장시즌엔 나도 사람인지라 배송속도가 평상시보다 느릴수 밖에 없다.
한박스에 20키로가 살짝넘는 놈을 들고 미친놈처럼 뛰어다닐순 없지 않은가...(사실 첫해엔 뛰어봤다...사람할짓이 아니더라)
야배(야간배송)가 필수인 오늘도
"택배 언제와요?" 만 수십통 받은것 같다.
육체적 피로에 정신적인 피로까지 겹치는게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난다.
가끔 지점에서 전화받는걸로 클레임이 많다고 이야기를 할때가 있다.
나뿐만 아니라 회원구 전체 소장들의 공통적인거라
누가 잘했니, 누구 때문이니 따질 부분이 아니다.
근데 오늘처럼 하루에도 같은 내용으로 사람만 다르게 수십통을 받다보면
앵무새가 되는 기분이다. 전화상담원들이 새삼스레 대단해보인다.
전화를 받다보면 몇가지 루틴이 생긴다. 요즘은 전화 포비아라 해서 전화를 걸었을때 안받고 바로 문자로 연락오는 경우도 많다. 내가 답답해서... 아니 장갑낀 손으로 문자답장하기가 쉽지 않아서 다시 전화를 걸면 받지 않고 또 문자로
"어디세요?" 라 날라온다... 그럼 나는 한숨을 쉬고 장갑을 벗고 택뱁니다. 주소가 이상해서 연락드립니다. 라 정중히 문자를 날려준다.
전화 포비아... 나로서는 당최 이해할수 없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통화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아니면 전화로 자기 할말만 하는 분들도 많다. 높은 확률로 판매자에게 따질 부분을 나한테 따지는 경우다.
사실 전화 포비아가 상대하기 편하지 이쪽은 답이 없을때가 많다. 서로 자기할말만 하다보면 언성이 올라가고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 핏대를 올려 싸우기직전까지 가면
"어? 지금 저한테 화내시는거에요?"
"아니 화내는게 아니라 고객님이 제 이야기를.."
"아 됐고 왜 화내시는거에요?" 라 대화(?)를 이어가며 2차전(?)을 시작하고...
상황이 정리되면 나는 현타에 빠진다. 손에는 배송할 택배를 쥐고 말이다.
제발 물어보려 전화를 하셨음 질문에 답변할 시간은 좀 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대화만 잘되면 아주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근데 전화로 상대하기 힘든 상대는 따로 있다.
주소나 송장번호 등등으로 자기를 알리는게 아닌 내가 묻는말에만 단답으로 답하는 사람이다. 걸리면 이거 엄청난 강적이다.
"택배가 안와서요."
"어디시죠?"
"ㅇㅇ아파트요."
"아니 주소가 어떻게 되시냐구요."
"경남 창원시..."
"아니 아파트 몇차 동호수요."
"경남 창원시..."
"저 고객님 죄송한데 회원구에만 소장이 20명이 넘어요... 동호수를 말해주셔야 확인이 가능해요."
"ㅇㅇㅇ동 ㅇㅇㅇ호요."
"죄송한데 ㅇㅇ아파트 맞으세요?"
"아뇨 ㅇㅇ아파트요."
"아 제구역이 아닙니다."
"...."
걍 처음부터 "ㅇㅇ 아파트 ㅇㅇㅇ동 ㅇㅇㅇ호인데요~" 로 시작했으면 한두마디로 해결될 문젠데... 서로간의 티키타카로 이어지는 저 답답한 대화 덕분에 귀중한 내 시간과 아직 택배를 받지 못한 고객의 기다림 시간만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비슷한 이름의 아파트들이 많다보니까, 혹은 비슷한 도로명 주소거나, 글자하나 차이로 완전 다른 주소가 되거나 하는 이유로 내구역이 아닌 주소의 택배가 잘못된 주소를 붙히고 나한테 오는 경우가 많다.
이런경우 내가 배송을 해주기엔 아주 어렵다. 받으시는 분 입장에선 그게 뭐 어려운일이라고? 할수 있겠으나...
하루에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서 움직여도 밥먹을 시간 짬내기 어려운 우리 입장에선 절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주소가 틀려도 배송해 달라 때쓰지말자... 직접 가지러 오던가 다음날 받던가 하는게 서로 좋은 해결책이다.
오늘은 이 모든걸 다 경험하는 그러한 날이였다. 제발 전화기 배터리가 나가서 꺼졌으면 좋겠단 생각도 한 3초정도 했다. 가뜩이나 무거운 짐을 들고서 몇발 움직이고 전화받고, 또 몇발 움직이고 전화받고... 이거 사람 할짓이 아니라서 정신적인 데미지를 아주 크게 받았다.
블투 이어폰을 껴도 막상 통화하며 배송하기엔 쉽지 않다. 배송지 동호수보면서 통화하다간 말이 헛나오는 경우도 허다해서 전화를 받을수록 배송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결국 퇴근시간만 점점 늦어질 뿐이다.
그래서 요즘에 택배 언제오냔 말에 "저도 퇴근하고 싶습니다."를 꼭 사용한다. 진짜 농담삼아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퇴근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다.... 오늘 세어보진 않았지만 5시 이후로(해가 빨리지니까 그만큼 전화가 더많이 오더라) 50번은 말한 것 같다. 아주그냥 나중엔 짜증이 밀려오더라...
이렇게 퇴근하는 날에는 이미 신경이 곤두설대로 곤두서서 앞에차가 조금이라도 이상한(?)행동을 하려하거나 주변사람의 사소한 행동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을 하곤 한다... 스트레스가 그만큼 많으니 뭐... 내가 이래서 담배를 못끊느....ㄴ...
무튼 오늘하루 피곤했고, 이번주는 아직 많이 남았으며, 아마 다음주, 다다음주까지 김장시즌은 계속될것으로 사료되서 아직 피곤할 시즌이 더 남았다. 그리곤 연말에 1월엔 설날도 끼여서...
뭐 돈은 많이 벌겠지만 그만큼 피곤하고 힘든 기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뭐 세상에 안힘든 일이 어딧겠냐만은 오늘은 좀 많이 힘들다...
담배한대만 더 태우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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